피로사회를 읽고.

 

철학은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밀접하고 중요한 학문이지만 일반인들에게 난해한 건 사실이다. 이과적 성향이 강할 의대생에게 철학 서적이 추천 도서로 등록되어 있어 어쩌면 이 책을 읽고 난 후 철학적 사고를 하고 사색에 잠겨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으로 책을 펼쳐 들었다.

 

이 책은 과거와 현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과 정서를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다. 인류 초창기부터 근대까지 인간은 지배 받고 지배해왔다.

 

 지배자들은 규율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정했으며 피지배자들은 지배자들의 도구로서 생산에 가담했다. 이 시대를 규율사회라 한다. 도구로서의 인간은 끊임 없이 부정당하고 억압당하면서 사회는 자연스럽게 광인과 범죄자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눈에 보이는 지배자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규율과 부정을 통한 생산은 장기적으로 갈수록 그 생산의 향상이 지체되기 때문이다. 현대의 성과사회는 개인에게 자유를 준다. 하지만 그 자유와 함께 능력의 긍정성을 주었다. ‘넌 할 수 있어’, ‘노력하면 불가능한 것은 없어’, ‘넌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야’. 개인에게 무한한 능력이 있음을 알리고 모든 결과는 자신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라 성과주체는 스스로를 착취하다가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 우울증이 발발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에서 개인이 성과주체로서 착취당하지않고 피폐해지지 않기 위해 심심함과 분노를 제시한다. 먼저 우리는 활동을 멈추고 심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분주함은 사색을 없애고 의미없이 활동하게 한다. 깊은 심심함은 우리가 정신적으로 이완할 수 있도록 하며 활동의 과잉을 절제하도록 한다. 분노는 현재 상황을 인지하고 활동을 중단한다는 점에서 짜증과는 구별된다. 활동을 중단하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에, 분노라는 현재에 대한 총체적 의문이 필요하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현세태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모두에게 교육의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게 되지만 공무원, 판검사, 의사, 대기업 취업 등 절대적 다수가 원하는 목표는 굉장히 획일화되어 공급이 수요를 압도해버렸다. 어쩔 수 없는 경쟁사회에서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은 가중되고 그 노력이 상향평준화가 되어 그 중에서 또 누군가를 뽑기 위해 목표의 관문은 점점 높아진다.

 

십 년 전 까지만 해도 유명서점에 가보면 자기계발서 코너가 큰 자리를 차지했었고 그 앞에는 2-30대 청년들이 그 앞에 서서 자신은 왜 이 성공한 저자처럼 노력하고 계획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것일까 자책하고 또 미래를 다짐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도 지쳐가는 것 같다. 끝없는 긍정의 과잉과 그와 대비되는 현재 상태는 우울증이라는 병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철학 책이기에 명확한 해답을 찾아주지는 않지만 이 사회를 날카롭게 진단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다른 여러 학자들도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성과주체인 개개인들도 이 책을 읽고 자신을 좀 더 객관화하여 보면 좀 더 나은 성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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