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찬양하는 두 가지 이유: 첫째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둘째는 비판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두 번의 찬양이면 매우 족하며 세 번의 찬양은 필요치 않다. 

-E.M.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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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맹독성 리트리버입니다.

신고리원전 공론화위원회가 공사 재개라는 권고안을 내논 뒤 '공론조사'라는 방식이 사회 갈등 해결에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사들도 대부분 호의적이며, 국민적 의견도 대부분 갈등을 해결하는 좋은 방식이라고 인정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숙의민주주의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저는 숙의민주주의가 미래에 우리 나라의 주요 사안들을 결정할 주요 의사결정 방법으로 선정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절차적 과정에서 '국민의 의견'을 더 경청하여 정치에서 중요한 명분을 얻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작인 숙의 민주주의가 나쁜 제도라는 것은 아니지만, 몇가지 비판을 통해서 더 좋은 제도로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부족한 재주로 몇자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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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국민에 의해서 환영받는 '숙의민주주의'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의 큰 결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신고리원전 건설 중지가 논란이 되었을때, 얼마나 많은 전문가와 얼마나 많은 언론이 합리적인 정보를 제공했었나요. 찬성측도 반대측도 나름대로 젖먹던 힘까지 다 내어 의견을 전개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토론 전의 반대 의견이 뒤집어질 확률이 매우 낮다고 예상했습니다. 이미 설명할거 다 하고 설득할거 다 한 사안이라면 바뀔 여지가 거의 없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렇지만 놀랍게도 결과는 뒤집어 졌습니다.

토론과 숙의 과정 이전의 일반 여론조사 결과와 최종 결론이 서로 반대되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사안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후반부로 갈수록 고리원전을 폐쇄하자는 사람의 숫자는 적어지고,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는 사람의 수는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건설 재개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다음에는 어떨까요?

설득과 이해의 과정을 통해 신고리 원전 건설 재개의 의견을 가진 사람의 비중이 늘고 있었다고 해도, 그 중간에 최종 투표가 이루어졌다면 결과는 달랐을 겁니다. 기간에 따라서도 매우 중요한 결정이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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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가 성숙화되는 과정에서 이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생각되지만, 아직 국민들에게 '최종 결정권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많은 국민들이 공론화 위원회의 권고를 '최종결정'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법률상으로 최종 결정을 하는 사람은 대통령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이렇게 된 판에, 만약 공론화단의 결정을 뒤집는 판단을 한다면, 정부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로는 '권고'이지만 무시하기 거의 힘든 권고라서, 사실상 권고의 수준을 넘어 보입니다.

따라서 정부가 숙의 과정이 시작되기 전에 공론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최종 결정은 결국 대통령이 하는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와 관련됩니다.

만약 공론화 과정을 통해 나온 결론이 '국민이 주인이다'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채택한다면, 그 결정이 명백한 오류로 판명났을때 책임은 누가 지는 걸까요?

471명의 이름없는 공론화 단에게 책임이 나눠지는 걸까요? 아니면 잘못된 방향으로 공론화단을 설득한 집단? 아니면 설득에 성공하지 못한 집단?

'국민의 뜻'이라는 메시지는 정치인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에도 좋은 문구입니다. 따라서 국민의 의견을 구하긴 했으나 최종 결정과 그 책임은 대통령이 진다는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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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정착화 된다면, 지도자와 전문가의 역할도 많이 변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도자는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다시 국민에게 돌려주는, 간접 민주주의의 의도와는 맞지 않은 방향을 보이게 될것 같습니다.

전문가의 위치도 바꿔 놓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전문가에게 전문 지식과 능력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 설득의 기술로 평가받는 시대가 다가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시대의 흐름이라면, 지도자도 전문가도 적응해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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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현실 정치에 스팀잇식 민주주의를 적용하기는 힘든 것을 알고 있지만, 가상화폐라는 새로운 시스템이 정치 제도의 변화까지 일으켜 주면 어떨까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봅니다.

사안에 대한 관심도와 전문성 그리고 개인적 이익을 배제한 사람의 보팅에 더 큰 가치를 매길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검증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사안에 관심도 많고, 개인의 이익을 배제했으며 전문지식도 많은 사람은 해당 투표에 있어서는 고래로,

관심도 없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투표하며 전문지식도 없는 사람은 플랑크톤으로 지정한다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발칙한 상상이고 현실 가능성이 떨어지죠 ^^ 상상은 자유니까 좋게봐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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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민주주의가 완벽한 제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검증할 수 만 있다면 철인통치가 가장 이상적인 통치라고 생각하지만, 철인을 증명할수도 없고 대중이 그의 생각을 반론없이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숙의민주주의에 대해서도 같은 의견입니다. 절차상의 정당성을 더욱 획득하고, 조금 더 진보된 의사결정 방법일수 있지만, 여전히 완벽한 제도는 아닙니다.

주제넘지만 '숙의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 체제에 대해서 환영과 찬양의 목소리가 대부분일때 조심스럽게 이런 문제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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