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앞에 양손가득 들고 온 짐을 내려 놓는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비밀번호를 빠르게 누르고, 배터리를 갈아끼운적이 없는데도 잘만 작동하는 전자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면 평소보다 훨씬 더 인기척이 없는 나의 집이다.

 

불을 키려고 익숙한 공간에 몸을 들이밀었는데, 아뿔싸 화장실 불을 켜놓고 갔었다.

 

원룸 가운데 불을 키면서 화장실의 불은 끄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행위를 하고 나서 침대에 잠시 몸을 뉘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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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으로 이사온지는 햇수로 4년째이다.

 

대학 6년 생활 중 2년은 부동산에 속아 집이라 하기 힘든 곳에 살았고, 학교를 다니며 정보를 얻어 훨씬 살기 좋고 친구들도 부러워 할만한 집을 얻었지만, 혼자 있는 집은 혼자 있는 집일 뿐이다.

 

어머니는 처음에 이 대학을 지원하려 고민하는 나와 아버지를 만류하셨었다.

 

6년의 세월을 하필이면 우리나라에서 육지중에는 서울과 가장 먼 부산에서 보낼 수 있겠냐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 익숙하게도 지긋지긋한 이 공간으로 떠나는 가볍지 않은 발걸음을 어머니는 '이제 3개월만 버티면 된다'는 말씀으로 위로해 주셨다.

 

정말 맞다. 이제 부산에서의 생활은 계획대로라면 3개월 뒤에는 끝나고, 그리운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산 집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여지없이 무겁다.

5년 하고도 8개월을 잘 버텨왔는데, 생각해보면 참 우습기도 한 일이다.

아마 너무 오랫동안 서울에 가있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평소였다면 길어야 4일, 짧으면 하루나 이틀정도만 서울에 스쳐가듯 머무르고 돌아왔는데, 이번 서울 여행은 열흘이나 되었다.

 

딱히 불만일 것도 없는 이 공간에 들어서면 뭔가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 그리고 그 느낌이 평소보다 더 심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이제 남은 시간은 정말 공부에만 매진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한몫 할 것이다.

 

문득 내 꼴이 우습다.

 

미래를 위해서 온 힘을 다하는 것이 지겹고 힘들어 휴식을 취했더니, 이제는 그 휴식이 주는 불쾌감, 불안감에 휘청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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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팽개쳐 둔 짐을 대충 정리하고 청바지를 처음으로 빨았다.

 

청바지는 빨래를 하면 상하고, 꼭 해야겠으면 손빨래를 하라고 하던데, 도저히 손빨래를 할 힘은 나지 않아서 그냥 가장 약한 세기로 세탁기에 돌려 버렸다.

 

빨면 안되는 옷. 안쉬면 안쉬는 대로 스트레스고, 쉬면 쉬는대로 스트레스 받는 사람.

 

청바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일단 저질러 놓았으니 어쩔수 없다.

 

뒤로 되돌아 갈 수도 없고, 되돌아 간다 해도 다른 선택을 할 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쉬었으니, 정신없이 태세를 전환해서 다시 달려야겠다.

 

싫든 좋든, 익숙한 외로움과는 또 같은 방을 써야 한다.

 

생각해보면 어렸을때부터 나는 외롭다는 단어를 자주 썼었다.

 

영어를 배우던 중학교 시절에도 lonely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써서 지적을 받았던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에도 외롭다는 타령을 했던 것을 보면 환경탓이 아니라 내 안의 외로움이 또 나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반갑지는 않지만, 나는 또 잘 버텨낼 수 있을것이다. 버티기 싫어도 외로운 시간은 흘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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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글로 인사드려 죄송합니다. 오늘도 스팀잇이 불안정하네요. Steemkr로 글을 올립니다.

 

어느새 연휴 마지막날입니다. 스티미안 여러분 모두 연휴에서 힘을 얻어 가셨길 기원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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