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데우스를 보고 살리에르를 사랑하다★★★★★

 

 

이 영화는 모차르트의 수많은 명곡들을 소개해준다. 또한 모차르트가 어떻게 그 곡에대한 아이디어를 얻었을까 하는 궁금증에 대한 뛰어난 상상력을 제공한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이 영화는 아름다운 음악에 대한 소개라는 의미보다 재능있는 사람들에 대한 보통사람 들의 열등감과, 보통사람의 고통과 아픔, 관계에서 생기는 오해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의미가 더 강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자신의 신에 대한 찬미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던 음악을 모차르트가 무시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이토록 살리에르의 마음을 이해했던 것은 나도 그처럼 보통사람이었고 열등감에 시달리며 괴로워 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부터 3학년 중간고사까지 모든 시험에서 한번도 빠짐없이 전교2등을 했었는데, 전교 1등을 했던 친구도 항상 똑같았다.  

 


모차르트는 죽기 전 침대위에서 살리에르에게 ‘당신이 날 별볼일 없게 보는 줄 알았어요. 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라고 말하며 죽어간다. 노인이 된 살리에르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 이유는 아마 이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느꼈던 열등감, 그 감정을 역으로 모차르트가 자신에게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 이 말을 듣고 놀라는 살리에르의 표정은 자신을 감추기 위한 표정이 아니라 진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렇게 살리에르의 마음속에서 모차르트에 대한 용서와 화해가 자라나려는 순간, 모차르트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살리에르는 32년동안 얼마나 모차르트에게 그가 자신에게 죽기전에 했던 말, ‘당신이 날 별볼일 없게 보는 줄 알았어요, 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살리에르를 찾아온 목사는 살리에르의 이야기를 듣고는 말을 잃는다. 그의 표정은 사람이 어떻게 다른이의 재능을 시기한다는 이유로 그토록 악날해질수 있느냐며 질책하는 신의 얼굴의 아니라 똑같이 고통받아온 인간의 얼굴, 그래서 도덕적인 잣대로 함부로 그의 죄에 대해 비난할 수 없어하는 인간의 얼굴이었다.

 

 

살리에르의 신에 대한 원망을 그리고 보통사람의 고통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일까. 목사역시 신을 원망했던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을 통해 살리에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고뇌하는, 충격받은 ‘인간’의 표정을 지은 것이라 생각한다.

 


살리에르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에 깊게 남는다. ‘I was speak for you, father. 세상의 모든 보통사람들이여, 너의 죄를 사하노라. ‘데미안’을 인용하자면 세계를 도덕적으로 찬미되는 신의 세계와 도덕적으로 인정되지 못하지만 분명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세계인 어둠의 세계로 나눈다.

 

 

데미안은 신이 지배하는 아름다운 세계가 찬미받는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 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어둠의 세계 역시 무시되어서는 안된다고 역설한다. 그래서 그는 선의 세계와 악의 세계에 속하는 어떠한 생각도 무시하거나 평가하려하지 않는 신 ‘압락사스’를 외친다. 모차르트를 신이 보낸 사람이라 하면 살리에르는 선의 세계와 악의 세계를 모두 관장하는 압락사스가 보낸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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